김  영  필서울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김 영 필서울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1991년 10월12일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 질문 때 양성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입을 열었다.

“2년 전부터 현대를 중심으로 한 30여개 재벌이 차기정권 창출을 위해 1조7,000억원의 자금을 확보, 현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을 ‘재벌연합신당’ 깃발 아래 결속하려는 준비를 해오다 이것이 공안세력에 포착돼 현정권의 분노를 샀기 때문에 세무조사를 하는 것 아니냐.”

무슨 얘기일까. 고(故) 정주영 회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와 정책반대에 따른 재계 세무조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옛 경험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재계 7위였던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됐고 명성그룹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기업인들은 그때 기억이 또렷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불러온 태광실업이나 최순실 사건이 아니더라도 정치 세무조사의 역사는 이렇게 깊다.

지난달 29일 국세행정 개혁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권고안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TF는 외압에 의한 특별세무조사(비정기 조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조사대상 선정 자체를 본청 납세자보호위원회에서 다툴 수 있게 했다.

위법·부당한 세무조사라면 중단시킬 수도 있다. 타기관 고위공무원이 세무조사에 관여하면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라고도 했다. 또 국세행정개혁위원회가 특별세무조사에 대한 보고를 받아 사실상 감독하도록 바꿨다. 문제가 됐던 교차세무조사도 엄격히 제한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절차가 투명해지고 외부감시가 많아지는 만큼 일하기는 어려워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이 번거롭고 일처리가 힘들어지는 만큼 납세자의 권익은 보호되고 특정 목적에 의한 세무조사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먼 것 같다. TF는 과거 논란이 됐던 세무조사 62건을 들여다봤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공개한 3건을 뺀 나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TF 단장인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공개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국세청에서 할 수 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놨다. 적폐청산을 한다는 TF가 왜 문제가 됐던 사안은 그들끼리만 보고 외부에 밝히지 않을까? 그렇다면 TF에는 왜 참여했나? 단장의 위치는 뭐고 국세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실제 TF는 신설되는 국세청 납세자보호위원회가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외에 전원이 외부위원이라고 자랑했다. 그런데 외부위원 15명 중 기획재정부 추천이 5명이다. 납보관까지 더하면 전체 위원 16명 중 37.5%가 정부 측 인사다. 게다가 위원장은 기재부 장관 추천으로 국세청장이 위촉한다. 기업의 이사회 의장, 정부의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의 위원장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회의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부분은 또 있다. 정보공개 권한이 없다는 TF는 체납자 재산 조회범위 확대를 위한 금융실명제법과 여권법 개정, 5억원인 해외금융계좌 신고기준금액 조정, 주요 역외거래에 대한 부과제척기간 연장 같은 사안을 잔뜩 넣어놨다. 올바르고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다른 부처와 국회 논의과정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이는 TF의 권한 밖 아닌가? 맞는 내용이라고 해서 정부 부처에서 그리고 TF가 먼저 국민들에게 발표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 혼선을 줄 수 있는 탓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국세청의)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마지막 장인 ‘세정 대응역량 강화를 위한 조직개편 및 인력 확충’에 가면 이번 TF의 목표가 뭐였는지를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된다. 국세행정 개혁TF다. 개혁을 통해 효율적인 조직운영을 하려면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건데 논리적 전개는 약하다.

TF는 복수 차장제 도입을 권고했다. 본청에 1명인 1급이 두 자리로 늘어나는 것이다. 인력재배치를 전제조건으로 달았지만 국세공무원 1인당 경제활동인구가 우리는 1,380명으로 독일(384명)과 영국(591명), 프랑스(448명)에 비해 한참 많음을 친절하게 달아 두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TF에서도 언급한 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세정업무에 본격적으로 접목되면 되레 행정인력의 감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국세행정 개혁TF는 국세청과 우리나라의 세정에 크고 깊은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국세청장이나 지방청장에 직접 민원이 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적에도 TF가 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한 것을 평가해주고 싶다. 곳곳에 TF 참가자들의 고민이 묻어난다.

그러나 이게 다여서는 안 된다. 미국의 유머 작가 윌 로저스는 “사람들은 적은 세금보다 공평한 세금을 원한다”고 했다. ‘2017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귀속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신고 근로자 1,774만명 가운데 43.6%는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 무려 774만2,000명에 달한다. 국민 개세주의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TF는 국세청의 인력 걱정보다 자영업자와 전문직의 과세를 포함해 이런 부분을 좀 더 고민했어야 했다. TF가 남긴 과제를 과세당국이 계속 풀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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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717호(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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