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고
[국세청 기자실 칼럼]국세청은 징세기관이다

김 도 년
중앙일보 경제정책팀 기자

행정기관 업무의 우선순위를 가늠하려면 기관장의 신년사를 보면 된다. 새해 화두로 제시하는 업무 중 기관이 역점을 두는 사업 순서대로 신년사에 나열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국세청도 마찬가지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소통, 상생, 공정, 청렴' 순서로 업무 방향을 제시했다. 신년사 발표 이후 국세청이 곧장 공개한 정책은 세금 고충을 해결하는 ‘납세자 소통팀' 추진 계획이었다.

취지는 나쁘지 않다. 국세청 직원들이 직접 산업단지, 집단상가, 전통시장을 찾아 세무 애로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은 ‘공급자 마인드'로 정책을 집행해 온 관료집단의 관성을 깨는 시도다. 국세청장이 직접 판교의 창업 기업들을 찾아 혁신 중소기업에 대해 세무조사 부담을 줄이겠다고 약속한 것도 파격적이었다. 전 직원이 5명 안팎인 창업기업들은 회계·세무 전문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이들에겐 고강도 세무조사보다는 적법하게 법인세를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시급했다. 국세청은 앞으로도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위한 종합적인 세정 지원 방안을 계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다. 납세자와의 소통, 취약 계층과의 상생이 국세청 업무의 우선순위가 됐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론 국세청의 이 같은 행보가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이는 건 아니다. 납세자와의 소통과 상생은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으로, 반드시 보완해야 할 과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들이 국세청이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할 사업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국세청은 기본적으로 징세 기관이다. 소득이 나오는 곳에서 세금을 걷고, 소득이 있음에도 세금을 탈루하는 곳을 적발해 누수를 막는 것이 이 기관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소통과 상생은 이런 본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예절'이다. 신년사에서는 세 번째로 거론된 ‘공정한 조세'가 국세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 그러나 이 화두가 세 번째로 거론된 배경엔 스타트업·벤처기업을 지원하는 ‘혁신성장'이란 정부 시책에 국세청도 동참하라는 의미가 담긴 것 아닐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민심이 험악해 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다독이는 데 국세청도 역할을 하라는 의미가 깔린 것 아닐까. 지나친 비약일지 모른다. 그러나 본업보다 부업이 강조되다 보면, 오해를 낳게 마련이다.

납세는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다. 정당원이 당비를 내고, 동아리 회원이 회비를 내야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듯, 세금은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기본적인 조건이다.(물론 형편이 어려워 세금을 못 내는 사람들은 예외로 한다)
권리를 갖는 것이 고충이거나 애로 사항일 수는 없다. 만약 세금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사람에게 세금이 부과돼 왔다면, 이는 나랏돈을 걷고 나눠주는 부의 재분배 시스템의 문제다.결국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복지 혜택의 출발이 세금이고 보면, 세금 그 자체에는 죄가 없지 않은가.

국세청의 고충 지원이 자칫 ‘세금은 무거운 짐이고, 덜어줘야 할 것'이라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각인시킬까 우려된다. 그러잖아도 한국에선 조선 시대 ‘삼정의 문란'과 일제의 수탈 등으로 유독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스스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주공화국을 세운 유럽 시민들처럼, 우리의 공동체를 꾸려나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내는 것이 세금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민주주의가 성숙해가는 만큼 ‘세금은 내긴 싫고, 복지 서비스는 받고 싶다'는 모순된 인식부터 버려야 한다.

2년 전 핀란드에 ‘기본소득' 실험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당시 핀란드 사회보장국 정책 담당자에게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국민의 조세 저항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질문을 받은 페르티 혼카넨 선임 연구원은 "복지를 위해서는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하더라고 단 1유로의 세금이라도 걷는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세금을 걷지 않는 것은 공화국 시민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빼앗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우린 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건설한 핀란드 국민처럼 생각하지 못할까. 우리 국민이 유독 못나서가 아니다.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이유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위 ‘가진 사람들'은 세금을 적게 낼 것이라는 인식, 세금을 내봐야 관료들의 농간에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불신이 강하다. 이런 불신이 쌓인 데에는 조세의 국민부담률은 높아졌음에도 대다수 국민이 여전히 아이를 낳고 키우기 어렵고,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복지 시스템 전반의 대수술이 필요한 부분이다.

국세청의 징세 행정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재벌 총수라도 세금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이 쌓이고 쌓여야 국민의 불신도 해소될 수 있다. ‘공정한 조세 행정'이란 뼈대 위에 다른 사업들이 곁가지로 붙는 구조가 바람직할 것이다. 징세가 공평하다고 생각이 되면, 국세청이 따로 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소통도 상생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744호(2019.3.16.)

<저작권자 © 세무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무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