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탈세 수법 갈수록 교묘해져…다국적기업 조세회피에도 철퇴

국세청이 역외 탈세 혐의가 짙은 기업과 자산가 등을 겨냥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16일 역외탈세 혐의가 큰 자산가와 기업, 외국 회사 등 104건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대상은 내국 법인 63개사와 자산가 20명, 외국계 법인 21개사 등이다.

국세청은 탈세 제보와 유관기관 정보, 현지정보 등 국내외 수집정보를 활용해 앞서 적발한 바 있는 신종 역외탈세 수법이나 다국적기업의 공격적 조세회피 수법 등과 유사한 탈루 혐의가 있는 사례를 조사 대상으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현장정보 수집을 통해 역외 탈세의 기획이나 실행에 적극 가담한 혐의가 있는 금융전문가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특히 이번 조사에는 스위스와 싱가포르로부터 입수한 탈세 정보도 적극 활용된다.

금융정보 자동교환 대상 국가가 확대되면서 작년 국세청에 정보를 제공한 국가에 스위스와 싱가포르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정보 교환 국가는 총 79개국이며 올해는 홍콩 등 103개국으로 늘어난다.

국세청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역외 탈세는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며 앞선 적발 사례를 소개했다.

국내에서 개발한 기술 등 무형자산을 정당한 대가 없이 해외 지사로 이전하거나, 해외 자회사로부터 기술 등의 사용 대가를 일부러 적게 받아내는 등의 방식으로 국내 소득을 해외로 이전한 사례가 발견됐다.

국내 매출보다 해외 계열사 매출이 현저히 큰 이른바 빙산형 기업 A사는 수백억원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개발한 특허기술을 사주 일가가 소유한 해외 법인이 무상으로 사용하게 했다.

사주일가는 해외법인으로부터 상식적인 수준을 넘는 과도한 월급을 받아 챙기며 호화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A사 사주일가에 소득세 등 120억여원을 추징했다.

글로벌 기업이 사업구조 개편(BR:Business Restructuring)을 명분으로 국내 자회사의 기능을 축소한 것처럼 속여 세금을 탈루한 사례도 있었다.
 


글로벌 기업 B사는 국내 자회사를 BR 이후 판매지원 용역만 제공하는 '판매대리인'으로 위장해 국내 거래처와의 거래를 통해 발생한 이익 대부분을 본사로 이전했다.

국세청은 국내 법인이 실질적으로 판매 및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보고 법인세 등 40억여원을 추징했다.

한 글로벌 기업 C사는 우리나라 기업과 만든 합작법인을 청산하기 위해 합작법인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과정에서 합작법인이 본사로부터 돈을 빌려 우리나라 기업의 지분을 매입하게 했다.

이 때문에 합작법인은 C사로 넘어간 이후 매년 수천억원의 이자비용을 내야 했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변칙계약으로 합작법인의 소득을 유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합작법인의 이자비용을 인정하지 않고 소득으로 전환, 1천700억여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했다.

국세청이 이번에 조사에 착수한 사건에서도 신종 기법이 많이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D사 사주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법인을 통해 중국과 네덜란드 등지에 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의 다단계 회피 수법으로 수년간 해외 현지법인을 신고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세회피처에 있는 신탁회사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법인 주식을 신탁하고, 배우자와 자녀를 신탁 수익자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편법 승계하고 증여세를 탈루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외의 신탁회사는 수익자 등 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아 역외탈세에 자주 이용되고 있다"며 "그러나 해외 정보 연계가 확대되면서 신탁 관련 정보도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사의 경우 중국 제조법인 등으로부터 받을 배당금을 케이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받아 세금을 누락했다.

그러고는 페이퍼컴퍼니에서 일부러 손실 거래를 발생시키거나 허위 비용을 계상하는 등의 수법으로 해외 자회사의 유보 소득에 대한 CFC 과세를 회피했다.

CFC(Controlled Foreign Corporation)는 해외 자회사의 소득을 모회사에 배당하지 않고 유보하는 식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요건을 성립한 경우 해외 자회사 유보 소득을 모회사가 배당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과세하는 제도다.

외국 회사가 국내 영업활동을 통해 발생한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고정사업장' 지위를 일부러 회피한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현행법상 통상 6개월을 초과해 용역 등이 수행되는 장소를 고정사업장으로 보고 과세한다.

F사는 국내 사업현장에서 중요한 용역을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국내 기업과 '사업서비스 장기 엔지니어링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그러고는 계약을 6개월 미만 사업으로 다시 나눠 외국 계열사들에 나눠주는 식으로 고정사업장 지위를 회피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간 역외탈세 459건을 조사해 총 2조6천568억원을 추징하고 12명은 고발조치했다"며 "갈수록 교묘해지는 다국적 기업의 BR, 고정사업장 회피 등 공격적 조세회피 행위에 대해 선제적 대응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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