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재정연구원 "EU 등 주요 국가 속속 도입…우리도 도입해야"

법률의 허점을 악용한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EU) 등에서 도입을 시작한 '의무보고제도'를 한국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세무사나 회계사 등이 세법의 허점을 이용해 공격적인 조세회피 행위를 기획하면 이를 실행하기 전에 미리 국세청과 같은 과세관청에 그 '설계도'를 보고토록 하고, 보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나 가산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뮤다ㆍ바하마 등 조세회피처 (PG)
[제작 최자윤] 일러스트


김무열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27일 월간 재정포럼 최신호에 게재한 '공격적 조세 전략에 관한 의무보고제도의 도입에 관한 소고' 보고서에서 이같은 주장을 펼쳤다.

공격적 조세 전략(ATP·Aggressive Tax Planning)이란 세무사나 회계사 등 기획자가 세법의 흠결을 이용해 고객의 이익을 위해 조세회피를 기획하는 것을 말한다.

세율이 낮은 국가로 이익을 이전해 세금을 줄이는 이러한 BEPS(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잠식)는 국가 간 이동성이 높은 서버나 클라우드, 모바일 등 디지털 정보 기술(IT)의 발달로 최근 더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조세회피를 적시에 파악하고 막기 위해 납세의무자나 기획자 등이 해당 내용을 과세관청에 보고토록 하는 제도가 '의무보고제도'다.

의무보고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5년 최종보고서를 제출한 BEPS 대응 프로젝트에도 권고 사항으로 규정돼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제공]


보고서는 작년 EU가 도입하고 내년 본격 시행되는 의무보고제도를 예로 설명했다.

EU의 제도 도입 목적은 ▲ 잠재적으로 공격적 조세 전략 모델을 계획하고 상품화하는 것을 저지하는 억제 효과 ▲ 법률의 흠결을 조기에 발견해 개정이나 폐지할 수 있는 법 정책적 목적 달성 ▲ 회원국 간 수집 정보 공유 등이다.

보고 자체만으로 해당 조세 전략을 합법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불법으로 처벌하는 것도 아니다. 법률 테두리 안에 있는 '절세 전략'까지 차단하는 것도 아니다.

EU는 기획자나 납세의무자가 해당 조세 전략이 실행됐거나 실행이 가능하게 된 날로부터 30일 안에 과세당국에 이를 보고토록 했다. 보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나 가산세 등의 제재가 내려지도록 했다.

보고 의무 기간이 납세 의무 기간보다 빠른데, 이는 조세 전략 위험성을 조기에 포착해 대규모 세원잠식이 생기기 전에 입법적 보완을 통해 세제상 맹점을 개선하려는 의도다.

의무보고제도는 권고 사항이지만, 캐나다·폴란드·포르투갈·영국·미국 등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는 것은 조세회피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보고서는 판단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제공]


보고서는 현행 국제조세조정법 11조(국제거래에 대한 자료제출 의무)가 이 제도와 유사한 규정이지만, 의무보고제도는 세제 혜택 가능성이 핵심인 별개의 제도이므로 새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여러 국가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기에 국제거래에 있어서 우리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국세청이 전면 도입한다면 조세회피 억제 효과로 세무조사나 데이터 분석 빈도가 줄면서 과세행정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국제거래에 관한 조세 전략으로 한정해 의무보고제도를 도입한다면 국제조세조정법을 개정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국내거래까지 포함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