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금융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 냈지만 패소
재판부 "판정문 공개할 경우 진행 중인 소송에 영향 우려"

법원


한국 정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첫 패소 사건을 두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판정문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김정중 부장판사)는 13일 민변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에서 민변의 청구를 기각했다. 관련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판정문을 공개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판단이다.

민변이 금융위원회에 공개를 요구한 문서는 이란의 가전업체 소유주인 다야니가(家)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의 중재판정문이다.

다야니 측은 2010년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대우일렉트로닉스를 파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소유한 가전회사 엔텍합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하고 계약보증금까지 받았으나 이듬해 해지하는 과정에서 '공평한 대우 원칙'을 위반하는 등 손해를 입었다며 2015년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국제중재판정부는 지난해 6월 다야니 측의 청구금액 935억원 중 약 730억원을 한국 정부가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캠코를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기관으로 보고 정부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 소송은 외국 기업이 낸 ISD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한 첫 사례다.

우리 정부는 그러나 대우일렉을 매각한 당사자는 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투자 기업과 국가 간 소송 구조인 ISD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영국고등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민변은 ISD 첫 패소 결과가 나오자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중재판정문을 공개하라고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거액의 세금이 나갈 수 있는 만큼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판정문을 공개해야 한다고 민변은 주장했다.

법원은 그러나 "중재판정문에는 현재 영국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소송의 핵심 쟁점들이 담겼을 가능성이 있다"며 "재판의 심의와 결과에 위험을 미칠 수 있어 비공개하는 게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판정문의 정보는 소송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보에 비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며 "제한된 정보로 설익은 논평이나 여론이 형성될 수 있고 그 경우 주도면밀한 소송 수행에 방해가 되고 재판부로서도 외적인 사항에 영향받을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소송을 제기한 민변의 송기호 변호사는 "이 판결대로라면 론스타의 5조원대 ISD 판정 결과가 나오더라도 판정문을 국민에게 바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만큼 민변과 상의해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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