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과율 30% 안 넘으면 보상도 못 받아…사과·배 170㏊ 피해

"바닥에 떨어진 것보다 부딪혀 상처 난 흠과가 더 문제인데… 그건 피해 보상도 못 받아요."

제13호 태풍 '링링'이 휩쓸고 간 충남 예산군 오가면 한 과수원 바닥에는 상처 난 사과들이 나뒹굴고 나뭇가지는 꺾인 채 참담한 모습이었다.

새파랗게 아직 익지 않은 부사부터 새빨갛게 익은 홍로까지 초속 20m를 넘는 강풍에 속절없이 우수수 떨어졌고, 그나마 가지에 남은 사과들도 군데군데 멍이 들어 있었다.

과수원 주인 박용식(84) 씨는 "떨어진 것보다 가지에 달려 있는 것들이 더 문제"라며 "지금 강풍으로 부딪혀 멍이 든 후지 같은 만생종은 11월 초 수확해 보면 딱딱해져 파과가 돼 버린다"고 말했다.    

농작물 재해보험을 적용받으려면 낙과 비율이 30% 이상 돼야 한다.

추석을 앞두고 수확해야 할 홍로도 낙과 피해를 많이 봤다.

박씨는 "올해는 작년보다 추석이 이른 데다 늦장마 때문에 일조량이 적어 홍로가 제대로 익지 못했다"며 "200그루 중 80그루는 따지 못하고 색 내려고 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여름 사과는 미리 따 놓으면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박씨처럼 출하 직전에 수확하려고 기다렸던 사과 농가들이 큰 피해를 봤다.

인근에서 6천600㎡ 규모의 사과 농원을 운영하는 김순종(74) 씨도 30% 정도 낙과 피해를 봤다.

김씨는 "홍로가 색깔이 아직 안 나서 절반 정도는 따지도 못하고, 나뭇가지 꺾이지 말라고 지지대도 매 놓고 방풍막도 설치했지만 떨어지는 데는 속수무책"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봄 냉해 피해도 없었고, 여름 일소·데임도 없이 잘 지나가나 했더니 가을 태풍이라는 복병이 찾아 왔다.

그는 "봄에 소독하고 적과 작업한다고 어렵게 사람 구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산에서 1만3천200㎡ 규모의 배 농사를 짓고 있는 양기동(68) 씨도 강풍으로 배에 상처가 나거나 낙과 피해를 봤다.    

양씨는 "매달려 있는 것도 가을에 수확해 보면 태풍 때 부딪히고 긁힌 것들 때문에 파과 비율이 높아진다"며 "올 봄에는 일기가 좋아서 배꽃도 냉해 피해를 안 보고 작황이 좋겠구나 생각했는데,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농협 등에서 파과를 수매해 사과 주스나 배즙으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양씨는 전했다.

그는 "농가마다 배즙 짜는 기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수요처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태풍으로 피해를 본 낙과를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며 "폐기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착잡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떨어진 사과나 배를 그대로 두면 썩어서 병충해가 전염되기 때문에, 보험 사정관이 낙과 비율 조사를 위해 다녀가고 나면 본격적으로 수거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이날 타지에 사는 자식이나 며느리들이 찾아와 부러진 나뭇가지를 동여매고 소독차량이 지나가도록 낙과를 길 옆으로 치우는 등 복구 작업을 도왔다.

양씨는 "그동안 4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면서 다섯 차례의 태풍을 겪었다"며 "곤파스나 매미 때보다 피해가 적다고는 하지만 태풍이 한 번 불면 일 년 농사 망치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토로했다.

대표적 사과 주산지 중 하나인 예산지역은 이번 태풍으로 사과 80.5㏊, 배 88.2㏊가 낙과 피해를 봤다. 낙과율은 사과 10%, 배는 30∼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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