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시가격의 현실화율(공시가/시세)을 90%로 끌어올리기로 한 것은 공시가격과 관련해 오랫동안 제기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조치다.


공시가격은 조세와 복지 등 60여가지가 넘는 다양한 행정 목적에 활용되는 기준으로 쓰이고 있지만 현실화율이 유형별, 가격대별로 50∼70% 수준으로 낮아 불균형은 물론 형평성 문제도 대두된 터였다.


국토교통부가 3일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 로드맵은 지난달 27일 국토연구원이 개최한 공청회에서 제시된 유력안과 내용이 같다.


현실화율을 90%까지 올리되 도달 시점을 유형별·가격대별로 다르게 설정했다.


단독주택은 2035년까지, 공동주택은 2030년까지, 토지는 2028년까지 현실화율 90%로 맞춘다는 계획이다.


한 유형에서도 가격대에 따라 목표 도달 시점이 달라진다. 공동주택 중 9억원 미만은 2030년까지 현실화율이 90%에 이르지만 15억원 이상 주택은 5년 뒤인 2025년에 90%에 도달한다.
한날에 모든 부동산의 현실화율을 90%로 맞추게 하려면 저가 부동산 소유자의 고통이 너무 크다.


2018년까지만 해도 저가 부동산보다 고가 부동산의 현실화율이 낮았다. 고가 부동산, 특히 서울 부촌에 있는 단독주택의 경우 비싼 시세에도 불구하고 공시가격은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 부자들이 좋은 집에 살면서 세금은 덜 낸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정부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고가 부동산의 공시가격을 대폭 끌어올리며 현실화율을 높였다. 그러자 공시가격을 한꺼번에 올리는 데 대한 반발이 제기됐고, 이에 국토부는 아예 모든 부동산의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키로 하고 그 방안을 담은 로드맵을 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오히려 저가 부동산의 현실화율이 고가보다 훨씬 낮다.


이 때문에 로드맵을 추진하면서 현실화율 도달 목표 시점을 통일한다면 저가 부동산의 공시가격 인상폭이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현실화율 제고 로드맵이 추진되면 주택과 토지 간 가격이 역전되는 현상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집의 공시가격보다 그 집이 올려져 있는 땅의 공시지가가 더 비싼 역전 현상으로 부동산 공시제도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국토부는 시세 9억원 이상 주택은 역전 현상이 4∼5년 내 대부분 해소될 수 있고, 9억원 미만 주택의 경우 현실화율(52.4%)이 토지(65.5%)보다 낮지만 현실화 기간에 역전현상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9억원 이상 주택의 인상율은 공동주택의 경우 연 3%포인트씩 올리게 했지만 단독주택은 9억~15억원은 3.6%포인트, 15억원 이상은 4.5%포인트로 인상폭을 설정해 고가일수록 더 가파른 속도로 공시가격이 오르도록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평성 논란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고가 공동주택은 이미 워낙 현실화율이 높은 점이 감안됐다”며 "단독주택이든 공동주택이든 비슷한 가격대의 주택은 현실화율이 비슷하게 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현실화율 제고 속도를 다소 달리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예외적 상황도 적지 않다.


신축 주택에 대해선 해당 연도의 현실화율 목표치를 바로 적용한다. 일례로 2024년에 신축된 아파트의 시세가 7억5천만원으로 평가되는 경우 현실화율 72.9%를 적용해 공시가격은 5억4천600여만원으로 산정된다. 이후 다른 주택과 같은 연도에 목표치에 도달하도록 연도별 균등한 폭(2.85%포인트)으로 현실화율을 높인다.


9억원 미만 주택이 처음 3년간 1%대 상승률로 현실화율을 천천히 올리게 돼 있으나 중간에 9억원 이상으로 가격대가 바뀌는 경우는 신규 가격구간의 목표 연수를 채우게 돼 목표 도달 시점이 더 짧아질 수 있다. 즉, 2022년에 아파트 시세가 8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라가면 기존 2년에다 새로운 가격대의 목표 연수인 7년을 더해 9년에 걸쳐 현실화율 90%에 도달하게 된다. 원래 9억 미만 아파트의 현실화율 도달 기간은 10년이다.


정부는 9억원 미만 주택에 대해선 초기 3년간 1%포인트씩 완만하게 현실화율을 높이도록 완충 장치도 달았다.


9억원 미만 주택의 경우 워낙 공시가격이 제각각이라 균형성이 떨어져 2023년까지 현실화율을 중간 목표치에 맞추게 하고 나서 최종 목표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인데, 저가 부동산을 소유한 서민이 초기에 큰 세부담을 지지 않도록 배려한 결과로도 해석된다.


이에 더해 정부는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을 소유한 1세대 1주택자에 대해선 보유세율을 0.05%포인트씩 낮춰주는 세제 혜택도 제공하기로 했다.


재산세 혜택을 어느 선까지 주느냐를 두고도 당·정·청 간 주장이 달라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여당은 공시가격 9억원 이하 주택까지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와 청와대는 공시가 9억원짜리 주택은 시세로 치면 13억원인 고가 주택이기에 혜택을 줄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청와대의 주장이 관철돼 재산세 혜택은 6억원 이하 주택에만 부여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은 전체 주택 1천873만가구 중 95.5%(1천789만가구)다. 서울에선 전체 주택 310만가구 중 80.0%(247만가구)에 달한다.


정부는 전국에서 재산세 인하 혜택이 부여되는 1가구 1주택자 보유 주택은 1천30만가구로 추산했다. 감면율은 22.2∼50%다.


올해 공시가격이 4억원인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주민은 3년간 재산세를 연평균 9만9천610원 덜 낼 수 있게 됐다.


공시가격이 1억6천500만원인 강원도 춘천시의 모 아파트 소유주는 3년간 재산세가 연평균 5만287원 감면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단, 정부는 재산세 인하 기간을 일단 초기 3년간으로 잡았다. 과도한 재산세 인하로 인해 지방 재정이 어려워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세금 내는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인상폭이 1%포인트씩 완만하게 오를 때 감면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정부는 9억원 미만 주택의 경우 내년부터 2023년까지 현실화율 인상폭을 1%포인트로 설정했다.


집주인 입장에선 초기 3년보다는 공시가격이 많이 오를 4년 뒤에도 재산세율을 낮춰주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이 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보통 조세 감면 등 특례는 통상적으로 3년을 주기로 시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3년 시행을 하고 3년 후에 여러 가지 상황을 재검토해서 계속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는 것이 행안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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