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도입한 고용보험 한계 도달…선진국도 적용 대상 확대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미정…재정 건전성 우려도 제기

정부가 23일 임금 근로자뿐 아니라 특수고용직(특고), 플랫폼 종사자, 자영업자 등 모든 취업자를 적용 대상으로 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의 청사진을 내놨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의 단계적 추진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지 7개월 만이다.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존 고용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나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모든 취업자를 위한 고용 안전망을 구축하는 세계적 추세와도 부합한다.

다만 특고, 플랫폼 종사자, 자영업자에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놓고는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용보험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 전 국민 고용보험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소득 기반 보험체계 개편이 관건
정부가 이날 발표한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특고, 플랫폼 종사자, 자영업자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2025년에는 가입자를 2천100만명으로 늘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를 위해 고용보험체계의 기반을 임금에서 소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1995년 도입된 고용보험은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0년대 말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노동시장의 변화에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도입 당시 고용보험은 상용직 근로자를 기준으로 설계됐다. 월 근로시간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 사업주가 근로복지공단에 피보험 자격 신고를 하고 월급 지급과 함께 보험료를 납부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이 급속히 확산했고 특고 등 다양한 고용 형태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스마트폰 앱 등을 매개로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은 상용직을 기준으로 설계된 고용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워 다수가 사각지대에 있다. 고용보험이 고용 안전망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주요 선진국도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모든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용 안전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프랑스는 2018년 '직업적 미래를 선택할 자유에 관한 법' 제정을 계기로 모든 취업자에게 적용되는 고용보험을 구축했다. 고용보험 재정 확충을 위해 취업자의 사회보장세도 인상했다.

스웨덴도 모든 취업자를 포괄하는 고용보험을 운영 중이다. 스웨덴의 고용보험체계는 의무 가입 대상인 기초보험과 임의 가입 대상인 소득 연동 보험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체계를 소득 정보 기반으로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고용보험을 소득 기반으로 하면 월 근로시간이 짧아 고용보험에 못 가입한 초단시간 근로자도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다. 이른바 '투잡'(two job) 근로자 등 일자리가 여러 개인 사람은 합산 소득을 기준으로 가입이 가능하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을 구축하는 데는 특고, 플랫폼 종사자, 자영업자의 소득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특고 중에서도 보험설계사와 같이 사업주가 매월 소득을 원천 징수하는 직종은 사업 소득 간이지급명세서 제출을 반기에서 월 단위로 단축해 소득 정보를 파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업주의 원천 징수 없이 특고 본인이 반기별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는 택배기사 등의 직종은 국세청이 특고의 전자세금계산서를 근로복지공단에 매월 제공하도록 해 소득을 파악한다. 전자세금계산서 의무 발급 대상도 확대한다.

플랫폼 종사자의 경우 플랫폼 기업이 거래 건별로 보험료 원천 징수와 납부를 하고 거래 내역을 신고하도록 한다.

정부는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고용보험 적용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고용보험(CG)
[연합뉴스TV 제공]

 

◇ 보험료 분담·재정 건전성 등 논란 예상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마련했지만,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첨예한 쟁점이 될 수 있는 특고와 플랫폼 종사자 등의 보험료 부담 방식 등도 로드맵에는 빠졌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특고의 보험료 부담 방식에 관한 질문에 "고용보험위원회 의결 사항은 실업급여 보험료의 경우 특고도 노사 균등 부담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라면서도 "실제로 어떻게 할지는 당사자 의견수렴 등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플랫폼 종사자의 보험료는 플랫폼 기업이 종사자와 노무 제공 계약을 체결한 경우 플랫폼 기업이 사업주 부담분을 내도록 하고 종사자가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었다면 해당 업체가 사업주 부담분을 내도록 할 수 있다고 이 장관은 설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에 대한 논평에서 "보험료 분담이 사업주와 종사자 간 역학 관계에 따라 적정하게 산정되지 않을 경우 경영과 고용 불안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급격히 확대할 경우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21∼2025년 고용보험 재정 추계 결과에 따르면 내년부터 특고의 고용보험 가입으로 5년 동안 4천499억원의 수입이 예상됐지만, 2025년에는 지출이 수입보다 176억원 많았다.

이 장관은 "자영업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방안 등이 확정돼야 재정 추계가 가능하다"며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맞추도록 재정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 구축에 나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데 좀 더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정부 계획대로 천천히 단계적으로 간다면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고 자주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데 위기 상황에서 고용보험 제도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과 함께 근로자에게만 적용해온 육아휴직급여를 특고,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민주노총은 "특고와 플랫폼 노동자 등에게 출산휴가급여 적용에 이어 육아휴직급여 적용을 검토하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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