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철오마이뉴스 경제부장
김 종 철오마이뉴스 경제부장

기자는 2년 전 이 칼럼난에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글에 ‘김정현'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사실 ‘가상'의 인물이라고는 했지만, 그는 더 이상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중국 등과 중개무역 등을 하는 연 매출 500억원대의 중소기업 사장인 그는 ‘사업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실제 최근 몇년 새 중국에서의 사업이 부침을 겪으면서, 회사 이익도 반토막이 났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비용 삭감 명문으로 구조조정에 나섰고, 100명이 넘던 직원들도 크게 줄였다.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김씨의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수억대에 달하는 연봉은 여전했고, 가족들 역시 매년 다니던 해외여행도 그대로였다. 그의 회사 장부를 엿보면, 중국을 비롯해 중남미, 유럽 등지의 해외법인과 거래가 유독 많다. 그는 해외 법인으로부터 물품을 수입하거나, 각종 컨설팅 비용 등으로 매년 수십만달러 넘게 돈을 보내기도 했다. 그가 거래한 해외 법인의 주요 이사나 임원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김씨의 아들과 부인 등 가족들이었다. 사실 김씨는 최근 몇년 새 회사가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정작 김씨 가족의 호화로운 생활은 여전했다. 해외로 재산 일부를 빼돌리거나 숨겨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김씨와 같은 경우는 이제 비일비재하다. 이같은 내용을 세정당국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같은 해외 재산은닉과 탈세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진보와 보수 가릴것 없이- 이같은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지만, 그 전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도,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것 또한 현실이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를 통한 세금 부과 역시 매년 증가추세다. 지난 2012년 202건에 8258억원 추징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211건의 조사에 1조789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이어 2014년에는 226건에 1조2179억원이었다. 이후 2015년 1조2861억원(223건) 등 최근 5년 동안 1조원을 훌쩍 넘는 돈을 추징하고 있다. 세무당국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좀처럼 해외로 재산을 빼돌려 탈세를 하려는 사람들 역시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외국 당국과의 과세정보 교류에 힘입어 이전보다는 역외 탈세 범죄를 찾아내는게 쉬워진 것도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은밀하게 차명으로 거래하거나, 작정하고 소득을 숨긴다면 정부 입장에서도 이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앞선 역외탈세 조사 통계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국세청은 최근에 역외 탈세 혐의자 39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매년 언론을 통해 나오는 역외탈세 조사지만, 수법은 전보다 더 교묘해지거나, 대담해진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수출계약을 체결한 뒤 불량제품인 것처럼 속여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매출액을 빼돌리기도 했다. 또 외국인으로 가장해 한국에 투자한 뒤 그 수익을 해외로 돌려놓기도 했고, 조세회피처에 있는 자신 가족의 이름으로 문서상 회사를 만들어 놓고, 컨설팅 용역비라고 속여 돈을 보내는 경우도 여전했다.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고, 세금을 탈루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 범죄다. 사회적으로 보면, 통합까지 해친다. 이들 범죄 행위자들의 상당수가 재벌 총수 일가나 고액 자산가나 사회 유명인 등이기 때문이다. 해외로 돈을 빼돌리기는커녕 돈 한 푼 저축하기 어려운 일반 서민들 입장에선 이같은 행태는 상대적 박탈감과 허탈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유리지갑'인 봉급생활자들은 여전히 성실하게 세금만 꼬박꼬박 내고 있는 ‘바보' 취급까지 당할 정도다. ‘공평'과 ‘형평성'은 사회를 구성하는 근간이다. 이 근간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이는 다시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 사람들이 그 사회의 법과 제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게 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세무당국은 역외 재산은닉과 탈세에 대해선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 혐의가 발견되면 철저히 조사하고 범죄가 입증되면 예외없이 처벌해야 한다. 세금이 공정하게 부과되고 있고, 국민에게 거둬들인 세금은 낭비되지 않는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좀더 한발짝 더 좋은 사회로 나갈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해외범죄수익환수를 위한 합동조사단을 설치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같은 고민의 흔적이다. 문 대통령도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빼돌리고 은닉해 세금을 안 내는 것은 공정과 정의를 해치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같은 비판은 과거 역대 정권에서도 나왔다. 대신 이번엔 국세청, 관세청, 검찰 등 관련 기관이 협조해 추적조사와 처벌, 범죄수익 환수를 제대로 하라고 특별히(?) 주문한 것이 눈에 띈다. 대통령이 직접 조사단을 꾸리고, 범죄 수익 환수까지 지시를 한 것은, 그만큼 역외 탈세에 대해 문제의식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 이제 다시 돌아가자. 가상의 인물이든, 실제의 인물이든 김씨가 만든 ‘그들만의 세상'은 온당치 않다. 굳이 대통령의 말을 옮기지 않더라도, 그의 행동이 반사회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해 겨울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든 시민들의 외침은 ‘정의'였다. 이제 ‘그들만의 세상'에서 ‘함께사는 세상'으로 가야할 때가 됐다.

※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724호(2018.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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