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심판원 퇴직 심판관이 현직 심판관에 사건 관련 '사적 접촉'
공직자윤리법 피해 전관 영향력 이용하려는 '꼼수' 지적도

퇴직 공무원이 공직자윤리법 취업 제한 규정을 피해 소규모 세무법인에 취업한 후 대형회계법인을 위한 로비 활동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위 공직자는 퇴직 후 대형회계법인에 직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규정을 피할 수 있는 '새끼' 세무법인을 이용한다는 업계의 풍문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자윤리법(CG)
 

9일 업계에 따르면 조세심판원 A 조세심판관은 지난 6월 말 국내 회계법인 '빅3' 중 하나인 삼정KPMG가 대리한 국내 대기업의 53억원 규모 관세 취소 사건 심의를 맡으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불과 두 달 전인 올해 4월까지 조세심판원에서 근무했던 세무사 B씨가 해당 사건을 잘 봐달라는 취지로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다.

조세심판원은 납세자가 부당한 세금을 내지 않도록 설립된 권리구제기관이다. 상임심판관과 비상임심판관 각 2명으로 구성된 심판부는 조세심판청구에 따라 심의를 거쳐 각하, 기각, 인용 결정을 내린다.

B씨는 조세심판원 요직인 행정실장을 2년 역임한 직후 상근심판관(고위공무원)으로 임용된 '전관'이었던데다 사적인 전화를 통했기에 A 심판관은 이를 로비로 간주했다.

A 심판관은 "사건을 심의하기 직전 B씨가 자신을 삼정KPMG에 소속된 성공세무법인 소속 세무사라 소개한 뒤 심의 예정 사건을 잘 봐달라 청탁했다"면서 "심판관이 누군지조차 대외비인데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이고 사적인 전화로 잘 봐달라 청탁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해 주심에게 청탁받은 사실을 즉시 보고했다"고 말했다.

A 심판관의 보고 뒤 심의된 사건은 결국 기각됐다.

B씨는 사적 접촉 사실은 인정했지만 청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B씨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삼정이 맡은 사건과 비슷한 다른 기업 사건이 이미 기각됐기 때문에 해당 사건도 기각이 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하지만 기존 사건과 논리가 달라졌기 때문에 자세히 들어봐 달라는 정도의 통화였으며, 안 되는 사건을 되게 해달라는 청탁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로비 의혹뿐 아니라 B씨의 소속에서도 불거진다.

B씨는 해당 사건을 대리한 삼정KPMG 소속이 아니라 성공세무법인 소속이다. 자신이 속한 회사 사건이 아닌 다른 회사 사건과 관련해 조세심판관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가 퇴직 뒤 취업을 목적으로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거나 취업 뒤 부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을 막기 위해 고위 공직자의 취업 제한을 규정했다.

고위공무원은 연 매출액 100억원 이상인 법무법인·회계법인이나 50억원 이상인 세무법인에는 원칙적으로 퇴직 후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B씨는 이 규정에 따르면 삼정KPMG에는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다만 연 매출 5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성공세무법인에는 '직행'할 수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B씨는 법률상 취업할 수 없는 삼정KPMG의 사건 심판을 담당하는 이에게 전관으로서 사적인 접촉을 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사적 접촉은 대형회계법인이 전관을 채용할 수 없게 되자 법률상 허점을 이용한 '꼼수'라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온다.

대형회계법인이 세무업무를 담당하는 '새끼 세무법인'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전관을 영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풍문이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는 평가다.

삼정KPMG는 이러한 의혹에 성공세무법인과 협력 관계인 것은 맞지만, B씨가 자사와 관련이 전혀 없으며 그러한 사적 접촉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취업제한 회계법인에 취업하지 않더라도 전관이 세무업무를 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직자윤리법의 허점은 그동안 수차례 지적됐다"며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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