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산정가의 80% 일률 적용해온 공시비율 개선
"일정 버퍼 필요" vs "공시비율 인상분만큼 공시가격 오르는 것은 아냐"

최근 내년도 주택 공시가격 조사·산정에 착수한 정부가 공시가격 산정 시 일률적으로 적용해온 '주택 공시비율'(산정금액의 80%)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감정원이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표준 단독주택에서 공시비율을 없애달라고 최근 서울시가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지만 이번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시비율 적용으로 인한 '공시가격-공시지가 역전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도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년도 공시가격에 올해 집값 상승분을 적극 반영하기로 한 가운데 공시비율까지 일률 조정될 경우 내년도 서울 특히, 고가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이 급등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 13년 만에 수술대 오르는 공시비율
공시비율은 감정원의 공시가격 조사자가 산정한 주택 가격에 일정 비율을 곱해 일률적으로 공시가격을 낮추는 일종의 '할인율'이다.

2005년 주택공시제도 도입 이래 주택의 급격한 보유세 부담 증가를 막기 위해 내부 지침 형태로 '80%' 비율을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A 아파트의 조사산정금액이 1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최종 공시가격은 공시비율 80%를 곱한 8억원으로 책정하는 식이다.

이러한 공시비율은 토지를 제외한 정부 공시대상 주택 1천707만호(공동주택 1천289만호, 단독주택 418만호)에 모두 적용된다.

공시비율은 사실상 공시가격의 상한 역할을 하면서 보유세 급등을 막고 집값 변동이 심할 때 시세보다 공시가격이 높아지는 문제 등을 막기 위한 '버퍼(완충)' 기능을 했다.

그러나 13년간 이어져 온 이 원칙이 최근 집값 급등과 고가주택에 대한 형평성 논란으로 인해 폐지 요구를 받고 있다.

일률적으로 적용해온 공시비율을 없애 고가주택 등에 대한 공시가격을 실거래·시세 수준까지 올려 보유세 부담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최근 고가주택의 보유세를 높이기 위해 국토부에 표준 단독주택의 공시비율 적용을 폐지하고 점차적으로 표준주택의 공시가격을 실거래가 수준으로 높여줄 것을 건의했다.

국토부와 감정원이 전국의 단독주택 418만호 가운데 대표성이 있는 표준주택 22만호의 공시가격을 정하면 이를 토대로 일선 구청 등 지자체가 396만호의 개별주택의 공시가격을 산정하게 되는데, 기준이 되는 표준주택 공시가격이 높아야 개별주택의 공시가격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시비율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로 불똥이 튀었다. 일부 의원들이 공시가격 현실화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재벌가가 보유한 초고가주택의 공시가격이 건물값을 뺀 토지 공시지가보다도 낮다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 문제의 근원이 바로 공시비율이기 때문이다.

실제 강남구 논현동 A주택의 경우 조사자의 산정가격은 64억8천만원이지만, 공시가격은 공시비율 80%가 적용돼 51억8천만원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 주택의 토지분 공시지가는 52억1천만원으로, 건물값을 제외한 땅값(공시지가)이 되레 주택 전체 가격(공시가격)보다 높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부 토지가격이 높은 지역 내 단독주택의 토지가격 비중이 건물가격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큰 경우, 공시비율 80% 적용으로 인해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과 달리 토지 공시지가는 공시비율(80%)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땅값이 비싼 강남이나 고가주택 밀집 지역에서 이런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공시가격 산정 방식 개선에 나선 국토부는 이러한 지적들을 고려해 현재 공시비율 개선 여부도 함께 검토 중이다.

현재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공시비율을 상향 또는 폐지했을 경우 주택 공시가격과 보유세 증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이달 중순부터 내년 1월 말에 발표될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의 조사 산정 업무가 시작된 가운데, 정부의 검토 결과에 따라 내년 공시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서울·단독주택 공시가격 급등" vs "공시비율 없애도 집값 상승 이내"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년 공시가격에 올해 집값 상승분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한 가운데 공시비율까지 없앤다면 지역 또는 유형에 따라 공시가격이 급등하는 곳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예를 들어 올해 조사자의 산정금액이 10억원인 B아파트는 공시비율 80% '룰(rule)'에 따라 공시가격이 8억원으로 책정됐는데 내년에 공시비율을 적용하지 않으면 집값 상승분 반영 없이도 공시가격이 10억원으로 결정돼 올해보다 25%가 뛰게 된다. 여기에다 올해 해당 아파트값이 10% 올랐다고 가정하고,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면 내년 공시가격 산정금액은 올해보다 10% 오른 11억원이 되고, 11억원이 그대로 공시가격으로 인정되면서 올해 공시가(8억원) 대비 37.5%나 상승하게 된다.

만약 내년 공시가격에도 공시비율 80%가 적용되면 조 사산정가 11억원의 80%인 8억8천만원이 공시가격으로 책정돼 올해 집값 상승분만큼(10%)만 오르지만, 공시비율 자체를 없애면 일시적으로 상승폭이 더 커지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집값 급등지역'에 대해서는 집값 상승분을 적극적으로 내년 공시가격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올해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서울 등지는 내년도 조사 산정 금액도 시세 상한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아파트보다 시세반영률이 낮은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은 인상폭이 더 커질 수 있다.

정부가 1주택 기준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인 공시가격 9억원 초과 고가 단독주택에 대해서는 시세반영률을 현행 50% 선에서 60% 정도로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감정평가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시가격 9억원이 넘는 단독주택은 시가 18억∼20억원 이상 고가주택"이라며 "이런 집들은 집값 상승분과 공시비율 변동, 시세반영률 조정까지 동시에 이뤄지면 내년 공시가격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공시비율이 없어지거나 상향되면 집값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고도 공시가격이 최대 25%까지 오르는 곳이 나올 수 있다.

주택 공시가격은 보유세뿐만 아니라 60여 가지 행정 목적으로 이용돼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장애인 연금 대상자, 근로장려금 대상자, 공공주택 입주자 등 복지혜택 수혜자가 감소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 이은권 의원실이 최근 보건복지부를 통해 받은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기초연금수급자 탈락 예측 통계'에 따르면 내년에 주택 공시가격이 20∼30%가량 오르면 서울지역에서만 1만1천∼1만9천여명이 기초연금수급자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 감정평가사는 "공시비율은 집값이 급등 또는 급락할 것에 대비해 적정 버퍼 역할을 해왔는데 공시가격의 광범위한 활용범위를 고려할 때 일률적인 폐지는 위험해 보인다"며 "일선 지자체도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민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감정평가사는 "공시가격은 전국의 모든 개별주택의 설계나 인테리어·내장재 수준까지 꼼꼼하게 감정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거래가와 주변 시세, 일부 개발 및 규제 영향력 등을 바탕으로 '조사·산정'하는 방식이어서 시세 100%를 그대로 공시가격으로 인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공시비율 적용 방식이 아니더라도 정확성의 한계 등을 감안할 때 적정 '버퍼'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유선종 교수는 "공시가격을 적정가격이라고 하면서 공시비율 등으로 왜곡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시세 그대로 공시가격을 매기되 보유세 급등 문제는 세율로 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현재 공시비율 개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상향 또는 폐지 등 구체적인 방향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또 공시비율이 상향 또는 폐지된다고 해서 공시비율 변동이 모두 공시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며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시가격 책정에서 전년 대비 집값 상승률이 중요한 것이지 공시비율을 없앤다고 해서 20%의 차이가 고스란히 공시가격 인상으로 반영되진 않을 것"이라며 "공시비율이 바뀌어도 결국 현재 집값 상승분을 감안한 최종 공시가격 이내로 흡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올해도 집값이 하락한 일부 지역은 공시가격이 작년보다 하락했다"며 "집값 급등지역과 고가주택에 대해서는 시세반영률을 높이되 집값이 약세를 보인 지방 또는 공시가격이 낮은 저가주택까지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3억원 이하가 1천102만호로 전체 공동주택(1천289만호)의 약 85%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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