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에서 연락을 받은 건 10월 중순이었다. ‘세무사 신문’에 기자들이 돌아가며 쓰는 ‘기자 칼럼’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 전화가 왔다. “뭘 써야하지?”라는 고민과 동시에 든 궁금증은 “원고료는 얼마일까”였다. 담당자분은 “소정의 원고료를 드린다”고만 알려줬다. 글을 쓰는 지금도 원고료가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고 있다.

기자에게 외부 기고, 라디오 출연 등으로 받는 돈은 쏠쏠한 가외 수입이다. 결혼한 선배들이 술을 사며 “비상금으로 산다”고 할 때, 비상금의 출처는 상당 부분 월급 외 원고료·출연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아 고정 지출이 많진 않다. 그래도 가외 수입이 들어오면 ‘쓸’ 생각하는 재미가 있다. 벌이가 뻔한 월급쟁이의 소소한 낙이라 해야 할까.

아직 원고료의 용처를 정하진 못했다. 두고두고 입을 겨울용 니트를 살지, 아니면 소장하고 싶었던 양서를 살지, 동생 용돈을 줄지, 아니면 다음번 소개팅에서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갈 때 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통장에 쟁여둘지 고민 중이다. 이래저래 지출이 많은 연말, 적잖은 보탬이 될 것은 분명하다.

예상 외 수입이 들어오면 누구나 기뻐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금 정부가 그렇다.
정부는 올해 수입, 그러니까 세수가 확 늘었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국세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조7000억원 늘어난 213조2000억원이었다. 연중 8월에 세수가 200조원 넘게 걷힌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그런데 마냥 웃지 못한다. 현재 추세라면 본예산 대비 초과 세수가 최소 20조원 넘게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매해 예산을 짜는 기획재정부는 대체로 예상 세수에 맞춰 본예산을 짜는데, 세수 추계를 너무 보수적으로 해 역설적으로 허리띠 졸라 맨 ‘긴축 재정’이 됐다고 지적한다. 가뜩이나 자동차·조선 등 주력 제조업 불황이 이어지고, 각종 경제지표가 나쁜 상황에서 적절한 재정투입이 필요했지만 이를 놓쳤다는 것이다.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8월 국회에서 “세수 추계를 마사지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보수적으로 세수 추계를 했다”고 인정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초과 세수를 예측 못하고 과감하게 추경을 하지 못한 것을 두고 ‘재정 실기’라고 비판했다. 김 부총리는 “일리 있다”고 답했다.
정부가 돈 쓰는 문제는 단지 초과 세수에만 얽혀있는 건 아니다. 증세와도 연관돼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13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종합부동산세 세수 증가분으로 “주택 소외 계층의 주거 복지에 쓰겠다”고만 밝혔다.
주거 복지 어느 분야에, 초과 세수분을 어떻게 나눠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을 비롯한 세금 전문가 3명이 지난 7월 출간한 <세금, 알야아 바꾼다>를 보면 정부가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할 때 구체적인 사용처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저자들은 “조세개혁 의제 수준부터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며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저출산 대책 패키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에 상응해 조세수입을 얼마만큼 올리겠다는 식의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수를 더 거둘 때 시민들을 설득하고 납세자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구체적 쓰임새를 밝혀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 관료들에게 종부세 추가 세수분을 어떻게 쓸지 구체적 청사진이 있냐고 물어봤다.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주거 복지 전반에 투입될 것”이었다. 서울 집값 잡기를 위해 급하게 종부세 과표구간을 늘리고 최고세율을 높였을 뿐, 추가 세수 용처는 여전히 구체적으로 구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에서 만난 한 보좌관은 “100억원이 갑자기 주어지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대뜸 물었다. 별 생각 없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번듯한 단독주택 하나 사서 집 걱정부터 덜고 싶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돈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대답”이라고 맞받아쳤다. 목 좋은 곳에 꼬박꼬박 월세 받을 수 있는 건물부터 사야한다고 보좌관은 주장했다. 남는 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분산 투자를 한 뒤 집을 사라고 충고까지 덧붙였다.
보좌관의 훈수처럼 100억원을 쓰는 것이 정답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돈 좀 굴릴 줄 아는 기본 관념은 나보다는 그에게 있어 보였다.
경제가 어렵다는 요즘, 들어오는 세수 좀 잘 쓸 줄 아는 능력이 절실해 보인다.

※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735호(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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