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국세청 관계자들이 기자실 단상 위에 올랐다. 부동산거래 탈세 혐의자 360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는 브리핑 자리였다.
당시 사회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상당했던 때였다. 보름여 후 9.13 부동산 종합대책이라는 범정부 대응이 나오기 직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기의 과열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시기다.
국세청은 조사 착수 배경에 대해 “일부 지역에서 국지적인 과열현상이 발생했고 이와 관련된 탈세혐의가 다양하게 포착됐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수집·분석한 뒤 탈세 혐의가 큰 이들을 조사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세금 탈루를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례도 언론에 다수 제공했다. 자금 여력이 없는 미성년자인데도 아파트 분양권을 증여 받거나 기획부동산 혐의 업체, 다운계약 등 기상천외한 탈루 유형들이 열거됐다. 서민 입장에선 호기심을 가질 만했지만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낄 수 있는 ‘금수저’들의 탈세였다.
자연스레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죄를 의심할만한 상당한 혐의가 있고 공공성이 있는 대상에 대해 대략적인 공개를 할 수 없느냐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국세청은 손사래를 쳤다. 개인(법인)에 대한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기자들이 세무조사 착수와 적발을 언론에 발표하는 구체적인 배경을 다시 물었다. “국민에게 알려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나왔다.
20여일 뒤 국세청 다른 관계자들이 브리핑 자리에서 섰다. 그날은 국부유출 역외탈세 혐의자 93명 전국 동시 세무조사 착수와 적발이 주제였다. 국세청은 연 1조원 이상 역외탈세 세금을 추징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데도 신종 수법이 지속 출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은 실제 신종 수법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통상 신종 행위는 모방 범죄 등의 우려 때문에 비공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세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역시 “세금 탈루는 결국 잡힌다”는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반면 국세청은 대기업 사주일가, 고소득 전문직, 연예기획사 등 공인으로 볼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선 일체 함구했다. 마찬가지로 개인 납세자 정보가 이유였다. 몇 개의 대기업인지, 어떤 전문직인지, 가수인지 배우인지 예능인지에 대해서도 입을 굳게 닫았다.
최근 고액 자산보유 미성년자 등 변칙증여 혐의자 225명 에 대한 조사 착수도 국세청은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대기업 포함 여부조차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사전에서 ‘공인’(公人)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찾아봤다. 말 그대로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공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유명 기업인, 정치가,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에게도 공인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다.
국립국어원도 현재 널리 알려져 인지도가 높은 사람을 가리켜 ‘공인’으로 표현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들을 공인으로 칭하는 이유는 사회적 책임도 상당해서다. 널리 알려진 만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고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유일호 전 의원이 개정안을 낸 뒤 2012년 수정된 국세기본법도 포탈세액 등이 연간 2억원 이상이면 인적사항을 공개토록 하고 있다.
수정 국세기본법은 고액 체납자의 경우 조세평형과 조세정의 차원에서 명단을 공개토록 예외조항을 두고 있지만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유명 연예인 등의 탈세는 제재할 수단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물론 우리 헌법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 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로 본다는 것인데, 이를 고려한 국세청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성실한 납세자는 존경을 받고 부도덕한 탈세자는 지탄을 받아야 한다는 기본 명제에서 접근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 정보는 보호하되, 좀 더 사회적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선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 말이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3대 핵심운영 방향 중 하나는 ‘공평한 과세’다. 고질적·지능적 탈세에 엄정 대응해 공평과세를 구현하고 자발적 성실납세 문화 정착, 세정집행 정차 개선을 통한 납세자 권익보호 강화 등은 세부과제로 적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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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737호(2018.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