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인플레 4% 육박, 10년여만에 최고…소비자심리지수 16개월만에 기준치 100 하회 얼어붙는 소비자 체감경기…생활형편·경기·소비지출·수입 모두 악화 한은 "물가 상승 기대 심리 제어 못하면 고물가 굳어져"…빅스텝 가능성 커져 시장에서도 7월 금통위 빅스텝 전망 확산…급격한 금리인상에 소비 위축 우려도

물가가 뛰고 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 소식이 넘쳐나자 주요 경제주체인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도 얼어붙고 있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기대 심리는 빠르게 커지는 반면 경기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면서,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물가를 잡으려 빅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 등을 통해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가 이자 걱정 등에 더 움츠러들고 자칫 내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소비자 체감경기…'물가 더 오르고 경기는 나빠질 것'(CG)

◇ 한달새 기대인플레 0.6%p↑ 급등…한은도 "과거보다 속도 빠르다"

한은이 29일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5월(3.3%)보다 0.6%포인트(p)나 올랐다.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고, 0.6%포인트 상승 폭은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기록이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향후 1년의 예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말하는데, 현재 시점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앞으로 1년간 4% 정도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아울러 기대인플레이션율 수준이 계속 높아지는 것은 소비자들 입장에서 실제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지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6∼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13년 9개월만에 가장 높았던 5월의 5.4%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4%에 근접한 절대 수준도 높지만, 더 큰 문제는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과거에도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7월부터 2009년 7월까지, 경기 회복 과정에서 일본지진과 유럽 재정위기 등이 겹친 2011년 3월부터 1년 정도 기대인플레이션율이 3.9%를 넘어 4%대에 이른 적이 있었다"며 "하지만 0.6%포인트 상승 속도는 과거보다 빠르다고 생각된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미국 빅 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등 관련 뉴스를 예전보다 많이 접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향후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 경제주체들은 전망에 따라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높여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임금 인상 압력도 커지고, 임금이 오르면 그 수준에 맞춰 가격도 또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한 단계 높아진 물가가 다시 떨어지지 않고 굳어질 수도 있다. 한은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21일 "국내외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며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물가 관리 목표인 2%를 넘어 3%를 상회하고 장기 기대인플레이션도 2% 수준까지 상승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가 임금을 자극하고 이는 다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물가간 상호작용(feedback)이 강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상된 컵밥 가격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8일 점심시간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의 한 가게 메뉴가격이 수정되어 있다. 상인들은 치솟은 물가 여파로 재료비가 오르며 컵밥 가격을 인상했다고 전했다. 2022.6.28 mjkang@yna.co.kr

◇ 소비자 경기 인식·전망 지수 급락…내수 위축 우려

일반적으로는 경기가 좋아지는 시기에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경기 상승과 함께 수요가 늘어나면서 물가도 오를 것이라는 시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기대인플레이션이 뛰는 동시에 부정적 경기 전망도 늘어나고 있다.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4로 5월(102.6)보다 6.2포인트 떨어져 2021년 2월(97.2) 이후 1년 4개월 만에 처음 기준선인 100을 밑돌았다.

CCSI가 100보다 높으면 장기평균(2003∼2021년)보다는 소비심리가 낙관적이라는 뜻인데, 결국 이달 소비자심리가 '비관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5월과 비교해 CCSI를 구성하는 6개 지수(현재생활형편·생활형편전망·가계수입전망·소비지출전망·현재경기판단·향후경기전망)가 모두 한 달 전보다 낮아졌는데, 특히 경기와 관련한 소비자들의 시각이 반영된 지수들이 급락했다.

한 달 새 향후경기전망(69)이 무려 15포인트나 추락했고, 현재경기판단(60)도 14포인트나 떨어졌다.

황 팀장은 "체감 물가 상승, 미국의 긴축 등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소비자 심리도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억눌렸던 펜트업 소비(지연소비·보복소비)에 희망을 거는 분위기다.

황 팀장은 소비자심리지수 전망에 대해 "우크라이나사태, 미국 금리 인상 등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 많아 불확실성이 크다"며 "다만 거리두기 해제 이후 소비가 매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수가 받쳐준다면 소비자심리지수 하락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류세 인하 등 물가 대책도 체감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은이 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 관리에만 초점을 맞춰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할 경우, 체감 경기는 더 나빠지고 소비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 총재도 지난 21일 빅 스텝 가능성에 대해 "빅 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물가가 올랐을 때 우리 경기나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봐야 한다"며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변동금리부 채권이 많기 때문에, 가계 이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7월 회의에서 빅 스텝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다.

한투증권은 "7월 한은의 빅 스텝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며 "물가 상승률과 기대인플레이션이 함께 오르는 국면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선제 대응이자 금융 시장 안정 조치로 현실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기록하면 빅스텝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모건스탠리 등은 여전히 한은이 빅 스텝 없이 올해 연말까지 네 차례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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