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 자리 잡은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

“사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팔 물건이 없어요. 어쩌다 나온 매물도 매수자가 나타나면 집주인이 금세 5천만 원씩 올려요.” (서울 송파구 잠실동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

연초부터 서울 아파트값이 이상 급등세를 보인다. 강남지역 재건축 아파트에서 비롯된 상승세는 용산·마포·성동구 등 강북 주요 지역과 판교·위례신도시 등 일부 수도권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일주일 만에 5천만~1억 원씩 호가가 오른 곳도 적지 않다. 정부가 지난해 5월 출범한 후 6차례나 관련 대책을 쏟아내며 시장 안정에 힘썼지만 기대와 다른 모습이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57% 오르며, 상승률이 8.2 대책 발표 전인 7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전용면적 76㎡는 지난해 9월 15억 원 안팎에서 최근 19억 원까지 뛰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도 지난해 9월 12억 원 선에서 최근 15억7천만 원으로 올랐다.

그런데도 매물이 나오면 중개업소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재빨리 매수자에게 연락해 집주인에게 1분이라도 먼저 계약금을 보내기 위해서다. 이 지역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물이 나오면 서너 시간 만에 계약이 된다”며 “지방에서도 돈 있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강남지역 아파트를 사려고 해 매물을 보지도 않고 계약할 정도”라고 말했다.

강남발 아파트값 강세는 강북지역으로도 확산되며, 특히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 광진구 등 도심권이 강세다. 마포구 아현동 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는 지난해 11월 10억5천만 원에서 두 달 만인 올해 1월 11억3천만 원까지 올라갔다. 이 아파트 인근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강남 집값이 계속 오르니 상대적으로 싼 강북으로도 사람들이 몰린다”며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도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신도시 중에선 분당·판교·위례 등 서울 강남권과 가까운 지역이 급등세다. 특히 분당과 판교는 벤처타운, 테크노밸리 조성 등의 호재가 겹쳐 분위기가 뜨겁다. 분당구 정자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올라와 매수한다”며 “매물은 부족한데 수요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관련 기관들 중에는 올해 주택시장이 지난해보다 위축될 것으로 예상한 곳이 많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18년 주택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전국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0.2%)을 작년(1.48%)보다 낮게 잡았다. 또 건설산업연구원은 전국적으로 0.5% 떨어질 것으로, 한국감정원 KAB부동산연구원은 0.3%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연초부터 서울 집값이 급등하자 노무현 정부 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당시에도 강남 등 일부 지역 집값을 잡기 위해 강력히 규제했지만 오히려 폭등했다. 현 정부도 당시와 정책 기조가 비슷해 집값 상승이 재현된다는 우려다.

정부는 추가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 개정에 시간이 걸리므로 우선은 과세 표준으로 활용하는 주택 공시가격의 시가 반영률(현재 60%)을 높이거나, 종합부동산세의 공정시장가액비율(현재 80%)을 높이는 방법이 거론된다.

재건축 속도를 늦춰 투자 열기를 꺾을 수도 있다. 이는 지난 정부가 2014년 9월 완화했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재건축 연한을 현행 30년에서 40년으로 늘려 투자 열기를 냉각시키고 가격 급등을 막는 것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준공 후 30년을 맞는 아파트는 67개 단지, 7만3천 가구에 달한다.

안전진단 통과 요건을 강화해 재건축 속도를 늦추는 방안도 있다. 과거 정부는 구조안전상 큰 문제가 없어도 층간소음 등 주거 여건이 불편하면 재건축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를 건물 노후화가 심한 경우에만 할 수 있게 하면 재건축 열기를 어느 정도 식힐 수 있다.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국토부는 이미 지난해 9월 이를 위한 기준을 마련했다. 최근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면서 분양가 상승률, 청약 경쟁률, 주택 거래량 등이 과열된 지역이 대상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송파구 집값은 2.15% 상승했고, 강남구는 1.94%, 서초구는 1.42% 올랐다. 모두 지난해 12월 서울 소비자물가 상승률(0.3%)의 2배가 넘는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들 대책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금 부담보다 시세 상승 폭이 훨씬 큰 상황에선 보유세 인상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관측이다. 대상자들의 조세 저항도 만만치 않다.

재건축 규제도 주택공급 축소로 이어져 집값 급등이나 주변 지역의 풍선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시세를 주변보다 낮추는 분양가 상한제 또한 청약 과열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서울, 특히 강남에 진입하려는 수요가 많은데도 정부 대책이 수요 억제에 치우친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 공급을 늘리거나 대체 주거지를 만들어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들 지역의 집값 급등은 공급 부족 외에도 학군 수요, 다주택자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만큼, 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서민 주거복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를테면 강남지역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내고, 해당 부지에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을 위한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자문기관인 R&C연구소의 양지영 소장은 “서울, 특히 강남은 2008년 금융위기 후 공급이 거의 중단됐다가 최근 조금씩 이뤄지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며 “신도시 등으로 나갔던 수요자들이 고급 인프라를 찾아 돌아오는 등 수요가 많아 가격이 급등하는 만큼, 원활한 공급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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