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내년 하반기 도입이 '분수령'…실효성·기업경영 침해 우려도

올 한해 증시의 화두 중 하나였던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 '스튜어드십 코드'가 오는 19일로 시행 1주년을 맞는다.

도입 후에도 한동안 답보 상태였던 스튜어드십 코드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물꼬가 트였다.

참여 기관이 늘고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도 도입 채비에 나서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실제 효과로 이어지기까지는 해결할 과제가 적지 않다.

◇ 새 정부 출범 뒤 '첫 테이프'…국민연금이 제도 정착 '열쇠'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타인의 자금을 맡아 운용하는 수탁자의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고자 만들어진 자율 지침이다.

기관투자자가 주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반성에서 출발해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이후 캐나다, 네덜란드, 스위스,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등이 뒤따르면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하거나 시행 예정인 국가가 20개국 가까이로 늘었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협력체인 ISG(Investor Stewardship Group)가 올해 초 기관투자자들을 위한 스튜어드십 및 지배구조 원칙을 발표해 내년 1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2014년부터 금융당국에서 논의를 시작, 작년 12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통해 기본 7개 원칙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으나 아직은 발걸음이 더디다.

시행 이후 5개월 넘게 참여기관이 나오지 않다가 주주가치 제고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첫 참여 기관이 나왔다.

최근까지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를 확정한 기관은 모두 14곳인데 이 중 자산운용사는 3곳에 그친다. 연기금이나 공제회는 50여 개에 이르는 참여 예정 기관에도 들어있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참여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에서만 100조원 넘게 굴리는 '큰 손' 국민연금이 가세해야 우정사업본부와 공무원연금 등 다른 연기금과 국민연금의 자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이 뒤따라 도입할 수 있다.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세계 최대 공적 연기금인 공적연금펀드(GPIF)가 초기부터 참여한 덕에 제도가 조기에 정착, 기업 전반의 주주환원정책 강화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가 제도 안착의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이 정부 입김에 좌우되지 않고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다면 낮은 배당과 불투명한 기업 거버넌스 구조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던 국내 증시 저평가 요인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노무라증권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추진으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시작됐다며 내년 코스피가 3,00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른바 '거수기' 주총 구태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고려하는 기관이 많아 내년 정기주총 시즌부터 기관투자자들이 주식을 많이 보유한 기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주주관여 활동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실효성 의문 남아…기업 경영권 침해 우려도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핵심은 법적 구속력 없는 느슨한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을 끌어올리면서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인데 이에 대한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가입과 이행을 강제하지 않는 연성규범이다. 원칙을 준수하되, 예외적 사항은 설명하는 방식(Comply or explain)을 기반으로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가입 여부와 적용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 7개 원칙 중 가능한 일부만 이행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도입은 해놓고 시늉만 내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기관투자자들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과정에서 경영에 지나치게 관여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기업가치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수익 극대화가 최대 목적인 기관투자자가 과연 제도의 취지대로 단기 성과보다 기업의 중장기 가치를 우선시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주주 행동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 이런 맥락에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만 하면 기업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며 "또한 내년부터 미국 ISG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시행되면 외국인 투자자의 집단행동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이런 우려를 해소하려면 스튜어드십 코드가 원래 취지대로 잘 이행되는지를 살피고 관리할 시스템과 주체가 명확하게 마련돼야 한다"며 "이해 상충이 없는 독립적 기관이나 금융감독기관에서 제대로 이행점검을 해야 제도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관투자자가 주주권을 행사할 때 필요한 기업 지배구조 관련 정보가 충분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지배구조 모범 규준'에 대한 자체 평가 보고서를 자율 공시하는 제도가 올해부터 도입됐으나 전체 748개사 중 참여사는 70개사뿐이다.

자발적으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내는 기업도 극소수 대기업에 그친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이에 대해 "투자자와 기업 모두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투자자는 주주로서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또 기업은 기관투자자의 관여를 경영권 침해로 여기기보다 자기편 주주로 끌어들일 기회로 봐야 한다"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관건은 결국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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