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다루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세무사와 문학은 얼핏 이질적 조합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편견을 깨고 박인목 세무사(세무법인 정담)가 지난 11월 수필집 ‘어느 행복한 날의 오후’를 출간했다. 오랜 기간 습작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삶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낸 에세이를 발간한 박 세무사를 만나 수필집 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눅진한 삶의 향기를 글로 옮기고 싶었다”

 

▶수필집 발간을 축하드린다. 직업이 세무사인데 수필집을 집필한 동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옛날에도 지금처럼 글은 돈이 되기 힘들었다. 초등학생 때 위암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의 짐을 짊어져야 했던 나로선 공무원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국세청에서 38년을 성실히 근무하며 숫자 속에 나를 숨겼다.
물론 당시에도 공직에 종사하며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자칫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글에만 매달린다는 오해를 사기 싫었다. 그러다 지난 2010년 명예퇴직을 하고 감춰온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원하고 후련했다. 아울러 소중한 두 딸과 손녀에게 내 인생의 편린이 하나의 완성된 문장, 한 편의 책으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수필집 내용에는 ‘유년기 아버지의 죽음’, ‘가난’이라는 상황적 힘에 떠밀려 살아왔지만 회한보다는 의연함이 묻어난다.
역경을 이겨내는 용빼는 재주는 나도 없다.(웃음) 다만 인복이 많아 삶의 고비마다 흔들리는 나를 쉬이 쓰러지지 못하게 잡아주었던 고마운 손길이 있었다. 글로는 차마 온전히 전하기 힘든 어머니의 헌신과 은사님의 도움, 평생의 짝꿍 아내가 버팀목이었다. 그러고 보면 매 순간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감사할 일이 많다 보니 어떤 대상이든 허투루 넘기지 않고 유심히 관찰을 할 수 있었고 다시 글감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쓰기에 관심은 있지만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노하우가 있다면.
뻔한 말이지만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다만 한 문장을 쓰려면 그 열 배를 읽어야 한다. 나는 매일 아침 5시 30분이면 일어나 2시간 동안 독서를 한다. 같은 글감이라도 ‘나라면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를 연구한다. 고요한 새벽 시간에 생각의 고리를 이어가다 보면 그 자체로 수양이 된다. 그러고 보면 독서는 흩어진 마음을 한 데 불러모으는 주술 같은 힘이 있는 듯하다.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게 첫걸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번에 수필집을 냈는데 다른 출간 계획도 있나?
책이 나왔다고 하니 주변에서 ‘그 나이에 대단하다’는 말씀이 많다. 올해 68세니 그럴만하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섭섭한 마음도 든다.
나는 ‘이 나이 이 정도 글이면 대단하다’는 틀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 2017년 현대수필에 ‘마지막 여행’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정식 등단했다. 이제는 오직 문장으로 평가받고자 한다. 또 앞으로 2년에 한 번씩 책을 내기로 목표를 정한 만큼 작가로서 성장하고 싶다.

▶세무사 업무가 주업무일텐데 전업 수필가로 전향하시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세무사 업무도 내가 평생을 애착을 가지고 붙들어온 천업이다. 납세자들의 권익 보호와 국가 재정 확보에 기여한다는 보람은 조세분야 최고전문가인 세무사의 기쁨이다. 다만 수필가는 지금껏 ‘해야 할 일’에만 치중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즐거운 제2의 직업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산다. 때로는 그것이 아련한 추억일 수도, 잊고 싶은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대게의 경우 글이 소재로 삼는 삶은 유쾌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 역시 부모님의 죽음, 대학입시 실패와 삼수의 경험 등 인생에서 처절히 외롭고 절망적이었던 순간을 글로 담았다.
기억을 반추해 글로 정리하다 보니 얽힌 실타래가 정리되는 기분이다.
세무사 여러분들도 격무를 마치고 하루 끝에 작은 습작 공책에 예전 기억이나 소소한 하루의 느낌을 적어내려 가면 좋을 것 같다.

세무사신문 제738호(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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