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으로 주고받은 이모티콘, 법정에서 주요 쟁점되기도

글 속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려면 행간(行間)을 읽으라는 얘기가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텍스트 속에 담지 못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인 이모지와 이모티콘은 증거의 엄밀한 해석을 요구하는 법정에서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에릭 골드먼 미국 산타클라라대 법학 교수는 최근 연구를 통해 미국 판례에서 이모티콘이나 이모지가 등장한 경우는 2004년 단 1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53건에 달한 것으로 분석했다.

주로 성범죄 사건의 판례에 등장했던 이모티콘은 시간이 지나며 살인과 강도 등 사건에서 피고의 심리 상태나 범행 성향을 나타내는 증거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이모지나 이모티콘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는 판례마다 해석이 제각각인 상황이다.

미국 IT 전문 매체 더버지에 따르면 2017년 이스라엘에서는 한 커플이 이모지를 잘못 썼다가 수천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이 커플은 집주인에게 아파트 임대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샴페인 병 등 여러 이모지를 덧붙였다. 이들은 메시지를 보낸 후 집주인에게 별다른 연락 없이 다른 아파트를 계약했다가 결국 고소당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해당 아이콘은 대단히 긍정적인 의미를 전달한다”며 "원고인 집주인은 자연스레 피고가 아파트를 임대하고 싶어한다고 믿게 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반대의 사례가 최근 있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그의 수행비서 출신 김지은씨와의 성폭행 법정 공방에서 둘 사이에 오간 이모티콘이 쟁점이 된 것이다.

안 전 지사의 변호인들은 김씨가 안 전 지사에게 ^^, ㅠㅠ 등 이모티콘을 쓰거나 애교 섞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친근감을 표시하는 등 성범죄 피해자라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런 증거들을 인정해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평소 사용해온 문투나 표현, 이모티콘이나 ‘애교 섞인 표현'이라고 칭하는 표현들은 젊은 사람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일상적·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얼굴을 맞댄 대화 못지않게 채팅이 많이 쓰이는 현실에서 이모지와 이모티콘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당분간 논쟁거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세무사신문 제744호(2019.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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