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세청이 불공정 탈세혐의가 큰 숨은 대재산가, 이른 바 ‘히든리치(Hidden Rich)' 95명에 대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히든리치는 국세청이 대기업 사주일가 탈세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허술해진 감시망을 틈타 차명회사 설립, 법인 간 변칙거래, 역외거래를 통한 기업자금 편취, 부동산·자본거래를 통한 편법 경영권 승계 등을 일삼았다. 이들은 사실상 빼돌린 세금을 해외 부동산 취득비, 사주 자녀 유학·체류비, 개인별장 유지비 등으로 사용했다.

이번 히든리치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조사대상 선정방식이다. 국세청은 그동안 주로 활용됐던 개인별 재산·소득자료 및 외환거래 등 금융정보, 내·외부 탈세정보 뿐만 아니라 고도화된 차세대 국세행정시스템(NTIS) 정보 분석 기술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사주일가 해외출입국 현황, 고급별장·고가미술품 등 사치성 자산 취득내역, 국가 간 정보교환자료 등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사주일가 및 개인 간, 특수 관계 기업 간, 사주 개인·기업 간 거래내역 전반을 들여다보는 입체적 분석방식을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밖에 사주일가 재산 현황 정보와 함께 재산의 형성·운용·이전 등 소득과 거래를 통한 재산 축적 및 승계 과정을 정밀 검증했다. "개별기업 단위별 미시적 분석방식에서 벗어나, 거시적·단계적 접근방식인 ‘탈루유형별 분석방법'도 동원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런데 빅데이터와 이를 분석하는 첨단기술을 활용한 과학세정에 대해 의구심이 생길만한 일이 히든처리 조사방침을 밝힌 지 한 달도 안 돼 발생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강남 유명 클럽 ‘아레나'다. 국세청은 얼마 전 아레나의 실사업자인 강 모 씨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 후 그를 명의위장·조세포탈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문제는 아레나 세무조사는 작년에도 실시됐는데, 당시 국세청은 다른 명의사업자들이 일관되게 본인들이 실사업자라고 주장했고, 조사팀의 광범위한 금융추적조사 등을 통해서도 강 씨가 실사업자라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찰의 지속적 출석 요구 등에 심적 압박을 느끼고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다보니 명의사업자 6명 중 3명이 본인들은 명의만 대여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은 강 씨가 실사업자임을 입증할 수 있는 휴대폰 메시지, 대화 녹취록, 확인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결국 결과만 놓고 보면 세금 안내려 해외에 위장계열사 세우고 환치기까지 하는 등 온갖 탈루수법을 동원한 히든리치는 첨단기술력을 동원해 적발에 성공했고, 겨우 클럽 사장이 실사업자인지 명의사업자인지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다는 뜻이다. 일반 국민입장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아마 이 같은 이유로 일부에서 ‘국세청이 아레나 봐주기 세무조사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수 있다. 국세청은 이러한 의혹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처음부터 법과 원칙대로 조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아레나를 ‘봐주기 조사'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차라리 적지 않은 인력·행정력 투입 대비 실익(實益), 다시 말해 징수 규모가 워낙 미미했기에 어느 단계에서 조사를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거둘 수 없는 세금이 적으면 조사를 대충해도 되냐”고 물으면 할 말 없지만, 그렇다고 한정된 자원으로 선택과 집중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안했다고 해서 ‘봐주기'란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최근 만난 국세청 고위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국세청 소속으로 일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유흥업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게 무엇이냐면 유흥업 사업자들이 화려한 겉보기와 달리 실제 보유한 재산은 얼마 없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고급 오피스텔 살고, 고급 외제차 타고, 초호화 여행 다니면서 돈을 물 쓰듯 써서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모았을 것 같지만, 사실 조사 해보면 실상은 빚더미 속에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그는 "유명 유흥업소에 대한 세무조사가 사회적으로야 큰 이슈가 되겠지만, 실제 추징하는 세금은 얼마 안 된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최근 착수한 룸살롱, 클럽, 호스트바 등 21개 유흥업소 세무조사를 두고 ‘사실상 지난해 조사가 미흡했음을 시인한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세청이 여론에 휩쓸려 세정운영을 하는 게 적절하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엄밀히 따져보면 국세청은 이미 지난 1월말 국세행정 운영방안을 발표하며 명의위장 유흥업소에 대한 탈세혐의 정밀분석·조사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조세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나오는 단골 메뉴 중 하나가 세제개편 내용이 개별 정책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단기적 시각만 가지고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세무조사도 긴 호흡으로 통일성을 갖고 이뤄지기 보단 단속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려면 버닝썬·아레나 사태 속에서 나타나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 행위가 없어져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버닝썬·아레나 사태를 외면할 수 없어 국세청이 필요이상의 시간과 인력을 조사에 쏟아 붓는 동안, 중소기업에 운영자금을 빌려주고 고리이자를 받는 기업형 사채업자가 활개를 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스마트폰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며 엄청 많은 소득을 올리는 사업자에 대한 탈세검증도 늦어질 수 있다. 무엇이 국가 경제에 더 큰 손해인지는 굳이 안 따져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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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745호(20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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