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성경에는 술(와인)에 대한 언급이 521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방주를 만들어 인류의 생명을 이은 노아는 대홍수 후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담가 마셨다는 대목도 나온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 중 와인(술)만큼 위대한 가치를 지닌 것은 없다”며 술을 칭송했다.
인류 최초의 술은 수렵·채취시대 과실주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잘 익어 당분을 함유한 과실이 땅에 떨어져 상처가 나거나 과육과 공기 중의 야생 효모가 자연적으로 접종돼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알코올이 함유된 액체, 즉 술이 됐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나뭇가지 갈라진 틈이나 바위 움푹 팬 곳에 원숭이가 저장해둔 과일이 발효된 것을 맛본 인간이, 신비한 액체에 매료돼 계속 술을 제조해 마시게 됐다는 설도 있다.

세계적으로 술에 세금을 언제부터 부과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1909년 ‘주세법’이 최초로 시행되면서 주세법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주세법 도입의 목적은, 국가 재정 확보를 위한 방편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물론 국민에게 음주 절제를 요구하는 ‘국민 건강 보건’ 향상의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술에 못지않은 역사를 갖고 있는 게 세금이다. 인류가 정착해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먹고 남는 생산물을 축적할 수 있게 되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과 전쟁이 발생하게 됐다. 이후 부족에 발생하는 문제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고 이들이 부족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방어 시설을 만들었다. 지금으로 치면 이들이 바로 ‘정치인’이지 싶다. 부족 구성원들은 자연히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이들에게 부족 공동의 경비를 지급했을 것인데, 이게 바로 오늘날의 세금이다.
세금의 기록은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점차 불어나는 세금을 일일이 사람이 머리로 기억할 수 없게 되자, 한 부족장이 점토판에 세금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 기록했다. 벼 이삭을 그리면 쌀이라는 뜻이고, 과일 모양은 과일을 의미했다.
세금은 ‘징수’의 목적도 있지만, ‘사회 질서 유지와 안정’의 목적도 컸다. 18세기 후반,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지금의 미국)에 영국 정부는 설탕세와 인지세 등을 부과했다. 세금은 식민지 주민들의 생계를 심각하게 위협할 정도였다고 한다. 식민지 주민들은 ‘자신들의 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영국 의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세금을 낼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영국은 식민지 국민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면서도, 차(茶)에 대한 세금은 계속 유지했다. 이에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에 몰려가 정박 중인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 배 2척을 습격해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아메리카 대륙 주민들은 자치 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바로 1776년 7월 4일 독립한 미국의 탄생배경이다.

술과 세금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세법’ 개정 사태를 말하기 위함이다. 50년 만에 주세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정부가 개정 여부를 두고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오히려 소비자와 기업에 혼란만 가중시켰다. 최근 맥주와 막걸리부터 우선 종량제로 전환하고, 소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는 현재 종가세 체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논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는 하지만 이미 주세법을 둘러싼 혼란은 소비자와 주류 기업의 화만 돋우고 말았다.
주세법 개정 논의는 2년 전부터 조금씩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종량세 전환을 골자로 하는 주세법 개편논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는데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조세 형평성 등을 이유로 개정 작업을 2019년으로 연기하겠다 밝히면서 개정안 논의는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이후에도 기재부는 "2019년 3월에 주세법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가 발표 시점을 4월과 5월로 계속해서 미뤘다. 정부 스스로 잡았던 개편시한이었던 5월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기한을 두지 않고 개편안 작업을 연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런 정부의 갈지자 행보에 소비자와 기업만 낭패를 봤다. 특히, 주세법 개정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수제 맥주 업계는 그야말로 ‘폭탄’을 맞았다. 한 수제 맥주 회사 대표는 모 편의점과 함께 주세법 개정을 전제로 자사 수제 맥주를 출시하기로 업무협약까지 맺었다고 했다. 원가 손해를 보는 가격에 제품을 출시하기로 했지만, 주세법이 개정되면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손해를 기꺼이 감수했는데, 5월이 돼도 주세법 개정작업이 기약이 없게 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시설 투자 계획을 세워 놓았다가 정부의 일방적인 주세법 개정 연기 발표에 넋을 잃은 수제 맥주 회사 대표도 있었다.
주세법 개정으로 가격 인상이 예상됐던 소주 회사들은 법이 바뀌기 전에 가격을 올리자며 일제히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수입 맥주 ‘4캔에 1만원’이라는 편익을 누렸던 소비자들도 주류 가격 인상에 애꿎은 피해만 봤다.

정부의 원칙 없고 철학 없는 주세법 개정 논란은 ‘세수 확보’와 ‘사회 안정’이라는 조세 목적을 상실한 채 지금도 우왕좌왕이다. 맥주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종량제로 전환하는 방안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이미 비를 흠뻑 맞은 기업과 소비자들은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뒤다.
전문가들은 주세법이 자칫 누더기 법안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맥주 업계 ‘민원 해결용으로 소주 업계 반발에 부딪혀 편법이 동원되고 소비자들의 불만에 눈치를 보며 개정작업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조세 ‘기본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누구도 만족하지 못할 대책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스승인 실레노스를 잘 대접해 줬다는 이유로 미다스 왕의 소원을 들어준다. "내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이 되도록 해 달라”는 미다스 왕의 소원을 듣고 내심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결국 그의 소원을 들어준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가져올 참혹한 결과를 알고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디오니소스는 주세법 개정을 둘러싼 인간 세상의 군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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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749호(20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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