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307조 및 310조 위헌 여부 놓고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아래의 어떤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 자체로 범죄가 될 수 없습니다."(청구인 측)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개인의 인격권 침해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사회적 평판을 저해하는 것을 무시하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법무부)

분명한 사실을 공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형법상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헌재는 10일 오후 2시 청사 대심판정에서 A씨가 형법 307조 등에 관해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A씨는 2017년 8월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반려견이 실명 위기에 놓이자 담당 수의사의 잘못을 온라인상에 공개하려 했다. 하지만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같은 해 10월 헌법소원을 냈다.

형법 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법 310조는 적시된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며 예외를 정하고 있다.

A씨 측 대리인은 적시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원칙적으로 범죄구성요건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형법 307조 및 310조는 사실을 밝힌 때도 범죄로 보고, 사후적으로 위법성을 면하는 방식이라 위헌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성적 지향, 가정사 등은 사실이라고 해도 공표되면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명예가 허울뿐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감추고 싶은 약점을 공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공개 변론에는 A씨 측 참고인으로 김재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는 홍영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석했다.

김 교수는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해 해당 사람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는 게 민주적인 사회"라며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때문에) 형사처벌이 두려워 문제 제기를 못 하는 건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유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라며 "미국 몬태나주 등은 일부 처벌 조항을 두고 있지만 기소 사례는 없다.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로 다루고 독일·영국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반면 홍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그 자유를 누린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기본권 박탈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많은 사람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억울한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은 (사실을) 폭로하는 것보다는 여러 법적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억울한 사정을 폭로하고 대상자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없게 망신 주는 길을 열어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최근 성범죄자의 신상을 알린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디지털 교도소'를 두고서도 자주 언급되는 법 조항이다.

디지털 교도소의 신상 공개를 명예훼손 위법성 조각 사유인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디지털 교도소의 자의적인 신상 공개가 비록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 해도 '비방 목적'이라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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